작성자 안진섭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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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8-12-07 00:00:00
사도신경 강해9 나는 성령과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통을 믿습니다
2008년 12월 7일 주일예배

설교자: 안진섭 목사

<사도신경 강해>

제9강 나는 성령과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통을 믿습니다
(개역개정판, 사도행전 2:1-47)

이제 사도신경 강해가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창조주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세 번째 위격에 해당하는 성령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사도신경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리스도가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성부 하나님에 대해서나 성령님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간단히 고백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나마 성부 하나님에 대해서는 짧기는 하지만 꼭 필요한 내용은 다 들어가 있는데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저 “성령을 믿사오며”라는 단순한 말로 끝내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짧기는 하지만 꼭 필요한 내용은 다 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며 천지를 만드신 분이고, 동시에 그 분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렇다면 성부 하나님에 대해서는 짧지만 꼭 필요한 내용을 넣고, 성자 예수님에 대해서는 상세히 묘사하면서, 성령님에 대해서는 이토록 간략하게 다루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먼저 사도신경의 구조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제일 처음에 성부 하나님에 대해서 고백합니다. 그 다음에 성자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성령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사도신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기본 틀로 놓고 그 안에 필요한 내용을 넣어서 고백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사실 “성령을 믿사오며”라는 고백은 그 한 마디의 고백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사실상 그 다음에 나오는 여러 고백들이 모두 성령님의 사역과 관련된 것입니다.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거룩한 공교회, 성도의 교통, 죄 용서, 몸의 부활, 영생, 이 주제들은 한결같이 성령님의 사역과 관련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 사역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오늘은 “성령을 믿사오며”부터 거룩한 공회와 성도의 교통까지 다루겠습니다.

1. 성령님은 누구십니까?

1) 성령님은 삼위 하나님 중 한 분입니다
마태복음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이 말씀에서 ‘이름으로’라고 할 때, 이름은 복수가 아니라 단수로 쓰였습니다. 비록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삼위를 언급하고 있지만 그 삼위가 모두 한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축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라고 해서 삼위가 일체된 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삼위 하나님 중에 한 분입니다.

2) 성령님은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간혹 성도들 중에는 아버지와 아들은 인격적인 존재이지만 성령님은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어떤 능력이나 힘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은 성도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신학자들 가운데도 그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생각은 성령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이 말씀에서 또 다른 보혜사는 곧 성령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표현은 인격적인 존재에게만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라는 인격체가 우리 가운데 오시면 그 분이 영원토록 함께 한다는 말입니다. 성령님을 인격적인 존재로 이해할 때 비로소 그 분의 신성에 대해서도 바르게 믿게 됩니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헌금의 일부를 숨기고 거짓말을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때 베드로는 그들이 성령을 속였다고 하고 곧 이어 그것은 곧 하나님께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령님을 속인 것은 곧 하나님께 거짓말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삼위 하나님 중에 한 위이시고, 영원토록 우리와 동행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2. 그렇다면 그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성령님께서 하시는 사역은 대단히 다양합니다. 사도신경에 나온 것만 해도 거룩한 보편적 교회를 이루고, 성도들로 하여금 교통하게 하고, 죄를 용서하고, 몸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 등 대단히 다양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오늘 본문에 나온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나는 거룩한 공회를 믿는다는 것이고, 둘째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사역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여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우주적인 교회와 지역교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2장에는 성령께서 임하시면서 우주적인 교회와 지역교회의 모습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에 있는 거룩한 공회는 우주적인 교회와 관련된 것이고, 성도의 교통은 지역교회와 관련된 것입니다.

1) 거룩한 공회

거룩한 공회가 영어로 Holy Catholic이라고 되어 있어서 개신교인들 가운데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카톨릭이란 오늘날 개신교와 구별되는 한 교단으로서의 카톨릭 교회가 아닙니다. 사도신경에서 말하는 카톨릭교회는 보편적 교회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보편적 교회를 믿습니다.

그렇다면 보편적 교회란 무엇입니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교회에는 우주적인 교회와 지역교회가 있습니다. 우리 새누리2교회는 지역교회입니다. 대전의 노은지구라는 한 지역에 위치한 지역교회입니다. 그런가하면 이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주적인 교회입니다.

사도신경은 그 우주적인 교회를 보편적인 교회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의 보편적인 교회를 믿습니다. 비록 각 나라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다양한 교회가 있지만 그 모든 교회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는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인 교회입니다.

지역교회는 등장하고 사라지는 일을 반복합니다. 한 교회가 개척되어 영광스럽게 성장하는가 하면, 다른 교회는 교인이 아무도 없어서 문을 닫기도 합니다. 지난 2000년 교회 역사에서 지역교회는 언제나 명멸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보편적 교회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보편적 교회를 믿습니다.

오늘날 지역교회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실망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은 하나님은 믿지만 교회는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교회를 부정합니다. 그것은 결코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이 땅에 오셔서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이루어가십니다.

비록 이 땅에 존재하는 지역교회들이 많은 문제로 인하여 넘어질지라도 주님을 머리로 모신 보편적 교회는 결코 넘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고 성령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신적인 유기체(Organism)이기 때문입니다.

데이빗 라르슨(David Larse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의 모든 분열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약점과 명백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사탄의 요새를 공격하여 승리하고 사망의 어두운 성채에 갇혀 있는 영혼을 구해내도록 하나님께서 택하신 유일한 단체이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우리 주님의 유일한 대안입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그 분은 자신의 제자들, 곧 교회에게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또한 성령께서 제자 공동체 가운데 임하여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진정한 교회를 이루셨습니다.

그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2장에 나옵니다. 사도행전 2장에 있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서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따라서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모여 함께 기도하면서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오순절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 성령께서 강한 능력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그 때 아주 특별하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순절이 유대인들의 중요한 절기였기 때문에 당시 예루살렘에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방언으로 말하자 예루살렘에 와 있던 각 나라 출신 유대인들이 자신들이 태어난 지역의 방언으로 그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9-11을 같이 읽겠습니다.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각 나라에서 절기를 지키러 온 사람들이 각자 자신들이 태어난 곳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이 사건은 거룩한 보편적 교회가 무엇인가를 암시하는 중요한 싸인입니다. 보편적 교회는 국가와 민족의 장벽을 넘어서 모든 사람들을 아우르는 교회입니다.


에베소서 2:13-15은 보편적 교회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3절에서 전에 멀리 있던 너희는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방인들은 본래 하나님을 모르던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이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서로 원수처럼 지내던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둘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그 둘을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보편적 교회입니다.

보편적 교회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는 교회입니다. 모든 국가적인 장벽을 뛰어넘는 교회입니다. 모든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교회입니다. 모든 인종적 장벽을 뛰어넘는 교회입니다. 모든 계층을 뛰어넘는 교회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보편적인 교회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보편적인 교회를 믿습니다. 인종과 국적의 차별이 없는 교회,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없는 교회, 가난한 자와 부자의 차별이 없는 교회, 많이 배운 자나 못 배운 자의 차별이 없는 교회, 우리가 믿고 우리가 추구하는 교회는 바로 그런 보편적인 교회입니다.

고린도전서 12:13은 보편적 교회가 성령의 사역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우리 앞에 있는 모든 장벽을 뛰어넘어 거룩한 보편적인 교회를 이루신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는 바로 그 성령님을 믿고, 그 분이 이루신 보편적인 교회를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보편적인 교회를 믿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는 단순히 그런 보편적인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하기만 하면 됩니까? 교회 안에서 모든 차별을 제거하고 누구나 올 수 있는 보편적인 교회를 만들기만 하면 됩니까?

물론 그런 고백과 실천은 중요한 것입니다. 의미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결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보편적인 교회를 믿고 보편적인 교회를 추구한다면 우리는 그 단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마태복음 28:19-20을 같이 읽겠습니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서 주 동사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보편적인 교회를 추구한다면 단지 차별을 제거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보다 적극적으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기 위해 열방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모든 나라와 민족, 백성과 방언으로 이루어진 보편적인 교회를 이루려면 복음을 들고 각 나라와 민족과 백성과 방언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이 보편적인 교회에서 소외된 나라가 있는 한, 이 보편적인 교회에서 소외된 민족이 있는 한 주님의 교회는 진정한 의미에서 보편적인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들고 각 나라로 가야 합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다”고 찬송하는 그 날까지 우리는 복음을 들고 열방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거룩한 보편적인 교회를 믿는 사람들이 마땅히 할 일입니다.

2) 성도의 교통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 중에 두 번째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교회에는 우주적인 교회와 지역교회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우주적인 교회에 속한 사람은 마땅히 눈에 보이는 지역교회에 속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진정으로 거룩한 보편적 교회를 추구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지역교회에 속하여 성도간에 서로 교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도간에 서로 교통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성도간에 교통하려면 먼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요한복음 15:5을 같이 읽겠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떠나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과 교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간에 참된 교통을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와 영적인 연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둘째로, 성도간의 교통의 기본은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주의 만찬은 단지 빵과 포도주를 즐기는 시간이 아닙니다. 우리가 떼는 떡은 주님의 몸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마시는 포도주는 주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과 피에 참여하면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주의 만찬에 참여할 때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룬 보편적인 교회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십시오.

셋째로, 우리는 실질적으로 성도간에 교통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43-47을 같이 읽겠습니다.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도행전 2장에는 우주적인 교회의 보편적인 모습과 지역교회의 실제적인 교통이 함께 나옵니다. 각 나라 출신들이 자신들의 난 곳 방언으로 사도들의 말을 듣고 있는 것이 우주적인 교회의 보편적인 모습을 암시한다면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가정마다 모여서 함께 음식을 먹고 물건을 서로 통용하는 모습은 지역교회의 실제적인 교통을 보여줍니다.

이 구절에 나오는 성도의 교통은 우리가 교회 안에서 어떻게 교통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44절을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모여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습니다. 거듭나기 이전에는 자기 물건을 자기 것으로 챙기는 것에 급급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거듭나서 교회를 이루었을 때 그들은 더 이상 자기 것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물건을 서로 통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이 성도 간의 교통입니다.

45절을 보면 자기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주었습니다. 물질의 나눔이 이루어질 때 진정한 교통이 이루어집니다. 교회 안에서 물질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사람을 보았다면 그를 도우십시오. 물질이 꼭 필요한 사람이 눈에 띈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나를 향하여 도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46절을 보면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모이고 집에서 함께 떡을 떼고 음식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 말씀에서 떡을 떼었다는 표현은 주의 만찬을 했다는 말이고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는 말은 식사를 했다는 말입니다. 진정한 교제는 먹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대단한 음식이 아니어도 함께 먹으면 그 속에서 성도 간에 교통이 이루어집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성도간에 교통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4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성도간에 참된 영적인 교통이 이루어진 결과 성도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크게 칭찬을 받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성도간의 교통이란 단순히 함께 모여서 노는 친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달라스 윌라드는 교제를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교제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배, 공부, 기도, 축하, 봉사의 일상적 행위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성령님은 보편적인 교회를 세우셨을 뿐만 아니라 각 지역교회도 세우셨습니다. 성령님은 보편적인 교회를 통하여 일하실 뿐만 아니라 각 지역 교회 안에서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편적인 교회를 믿는다고 신앙고백을 할 뿐만 아니라 각 지역교회에서 구체적으로 교통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처럼 자주 모여야 합니다. 주일예배와 수요예배 등 교회 공동체가 함께 약속한 예배에 성실하게 참여해야 합니다. 함께 모여서 찬송하고,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함께 모여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물론 각자 집에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0:24-25은 이렇게 말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모이기를 폐하는 것은 말세에 벌어지는 타락한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공적인 예배에 성실하게 참여하십시오.

주일예배에 빠지지 마십시오. 주일예배는 주님의 몸인 교회 공동체가 함께 모여 드리는 소중한 예배입니다. 수요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분들은 앞으로 시간을 조정하여 수요예배에 참여하십시오. 수요예배 역시 교회 공동체가 함께 약속한 예배입니다.


한 주일의 중간에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며 새로운 힘을 공급받는 시간은 우리 신앙생활에 꼭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수요예배에 빠지지 마십시오. 목장식구들끼리 서로 권면하고 카풀하여 함께 참여하십시오. 또한 목장모임에 성실하게 참여하십시오. 목장에서 함께 모여 떡을 떼고 음식을 나누십시오. 그것이 진정한 교제에 이르는 길입니다.

시간을 내어 교회를 섬기십시오. 교회는 많은 성도들의 섬김과 희생으로 자라갑니다. 여러분이 편안하게 예배드리는 이 시간에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의 봉사가 없다면 어떻게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편안하게 예배드릴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편안하게 주보를 받아보게 하기 위해서 전날 저녁부터 주보를 일일이 손으로 접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토요일에는 목장별로 돌아가면서 예배드리는 이 장소와 교육관을 깨끗이 청소합니다. 그 분들의 섬김이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청결한 장소에서 예배드립니다. 우리교회 안에 있는 다양한 필요를 따라 시간을 내어 봉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이웃과 나누는 일에 힘쓰십시오. 교회 안의 어려운 지체를 위하여 헌금하기를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보편적인 교회를 이루기 위하여 선교헌금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물질의 나눔이 없는 사람은 진정한 교통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성령님께서 이루신 거룩한 보편적 교회를 믿을 뿐만 아니라 성도들 간에 진정한 교통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할 때마다 그 고백에는 이런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거룩한 영인 성령님은 거룩한 보편적 교회를 이루시고, 거룩한 사람들간에 실제적인 교통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런 성령님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 믿음으로 거룩한 보편적 교회를 이루시고, 그 믿음으로 지역교회인 우리 교회에서 성도간에 참된 교통을 나누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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