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박경진 | ||
조회수 | 692 | ||
작성일 | 2016-05-08 12:46:38 |
에스더에 나타난 하나님 |
에스더서에 나타난 하나님(에스더 4:13-17)
1. 에스더서의 역사적 배경
오늘은 구약성경의 에스더서에 담긴 메시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에스더서를 이해하려면 이 책에 기록된 사건의 시대적 배경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에스서에 기록된 사건은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왕의 치리 기간에 벌어진 일입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은 바벨론제국을 무너뜨리고 대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은 현재의 터키지역부터 거의 중동 전역과 북아프리카 일부 지역에 걸친 넓은 땅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그 페르시아 제국의 4대 왕이었습니다. 당시 페르시아는 세계를 향하여 팽창하고 있었는데 당시 세계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동양쪽에서는 중국에 공자가 등장하였습니다. 또한 서양쪽에서는 아테네에 민주정치의 기초를 마련한 정치가 페리클레스가 활동하면서 전성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시인이자 극작가인 소포클레스, 역사가 헤로도토스, 철학자 프로타고라스도 동시대에 활동했습니다.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피타고라스도 대략 이 시대 사람입니다. 서양이 아테네를 중심으로 문명의 꽃을 피우는 동안 중동지역의 거대제국이었던 페르시아 왕국도 그리스 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었습니다(김윤희, 에스더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12-13).
아하수에로의 아버지는 페르시아 제국의 3대 왕이었던 다리우스 1세였습니다. 다리우스 1세는 주전 490년에 아테네 정복전쟁에 나섰다가 그 유명한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하고 맙니다. 그 때 한 병사가 마라톤 평야에서 아테네까지 뛰어가 아테네군이 승리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숨졌다는 일화에서 마라톤이 유래되었습니다. 그 구간을 측정해 보니 42.195km라고 해서 현재 마라톤의 공식 거리가 되었습니다. 다리우스 1세가 죽고 에스더서에서 에스더의 남편으로 등장하는 아하수에로가 왕이 되었습니다. 아하수에로는 아버지가 못 이룬 아테네 정복의 꿈을 이루기 위해 페르시아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 원정에 나서게 됩니다. 이에 맞서 그리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연합군을 구성하여 대치합니다. 이 전쟁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이 헐리우드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스파르타의 300용사들입니다. 스파르타의 300용사들은 페르시아 대군과 맞서 마지막 한 명까지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그리스 군은 전열을 정비합니다. 전열을 정비한 그리스군은 전략상 아테네를 비우고 페르시아 군을 살라미스로 유인하여 그 해전에서 대승을 거둡니다. 그 후 플라타이아 전쟁에서 패배한 아하수에로 왕은 원정에서 돌아와 향략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주전 465년에 후궁들 간의 음모로 암살을 당합니다. 아하수에로가 에스더를 왕후로 선발한 시기는 그가 그리스 원정에서 패배하고 돌아와 향락으로 일삼던 시기였습니다(김윤희, 13-14). 에스더서는 그 시기에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페르시아 제국에서 살고 있던 유대인들과 관련하여 벌어진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2. 에스더서의 내용
이제 에스더서의 내용을 대략 살펴보겠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즉위한 후에 제국의 위엄을 알리기 위해 잔치를 열었습니다. 잔치를 진행하다가 흥이 난 왕은 와스디 왕후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기 위해 왕 앞으로 나오라고 청했는데 와스디는 이를 거절합니다. 진노한 아하수에로는 와스디를 폐위하고 새로운 왕후를 찾게 됩니다. 이 때 페르시아에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 가운데 모르드개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에스더라는 양녀가 있었습니다. 용모가 아리따웠던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의 부인을 찾는 과정에서 담당자의 눈에 띄게 되었고 결국 왕비로 발탁됩니다. 한편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를 암살하려고 했던 왕의 내시 두 사람의 음모를 알아내어 왕비 에스더를 통해 왕에게 아뢰어 아하수에로를 구해내는 공을 세웁니다.
그 때 페르시아 제국에 하만이라는 신하가 있었는데 아하수에로는 그를 신하들 중에 가장 높은 지위에 올립니다. 왕은 모든 신하들로 하여금 하만에게 꿇어 절하게 합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굴복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이를 불쾌하게 여겼던 하만은 모르드개가 유대인인 것을 알고 유대인들을 몰살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당시 그리스 정복전쟁에서 패배하고 돌아와 의욕을 상실했던 아하수에로는 하만의 악한 계획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 채 하만에게 전권을 위임합니다. 결국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의 이름으로 전국에 조서를 내려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유대인들을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도록 합니다. 그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모르드개는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대궐 문 앞에서 통곡합니다.
그 후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왕에게 요청하여 유대민족을 구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합니다. 그러나 당시 법으로는 왕비라고 해도 자유롭게 왕에게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왕이 먼저 불러야만 왕에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만약 허락 없이 왕에게 나아가면 왕비라고 해도 죽임을 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왕비 에스더는 30일이나 왕의 부름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이런 전후사정을 이야기하면서 모르드개의 요청을 거절하였습니다. 자신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에스더는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모르드개가 단호하게 말합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겠지만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할 것이다. 네가 왕후가 된 것이 이 때를 위함인지 누가 알겠느냐?” 모르드개의 말을 듣고 에스더는 결단을 내립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유다인을 다 모으고 밤낮 삼일을 금식하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면 자신도 금식한 후에 왕에게 나아가 간청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에스더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도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그 후 에스더는 잔치를 열어 왕과 하만을 함께 초청하여 왕을 기쁘게 합니다. 마음이 즐거워진 왕은 에스더에게 나라의 절반이라도 줄테니 청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합니다. 에스더는 아무런 청도 하지 않고 다음 날 또 잔치에 와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날 밤에 잠이 오지 않은 아하수에로왕은 왕실의 기록을 읽게 됩니다. 그 기록을 통해 모르드개가 암살 음모를 꾸몄던 내시들로부터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왕은 하만을 불러 내가 존귀하게 하려는 자에게 어떤 대우를 하면 좋겠냐고 물어봅니다. 하만은 자신을 존귀하게 하려는 줄 알고 그 사람에게 왕복을 입히고 왕이 타는 말을 타고 왕관을 씌워주라고 권합니다. 그 말을 듣고 왕은 당장 모르드개에게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합니다. 제 꾀에 넘어간 하만은 크게 분노합니다. 다음 날 다시 잔치가 열렸고 왕은 에스더에게 청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그 때 에스더는 용기를 내어 하만이 유대인을 몰살하려는 악한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을 아룁니다. 분노한 왕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하만은 에스더가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려 살려달라고 애걸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마치 왕비를 강간하려는 것처럼 보여 왕의 분노를 더욱 크게 불러일으켰습니다. 결국 아하수에로왕은 모르드개를 처형하려고 준비했던 나무에 하만을 매달아 처형하고 맙니다.
이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되는 것 같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대인을 죽이라는 조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왕이라고 해도 한 번 내린 조서를 철회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하수에로는 유대인들에게 무장하고 저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새로운 조서를 내립니다. 그러는 사이에 왕은 자신을 구해준 모르드개를 높은 자리에 올립니다. 그러자 유대인 출신인 모르드개의 권력과 왕의 조서로 인하여 유대인들을 몰살하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됩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놀라운 구원을 체험합니다. 그 때부터 유대인들은 몰살당할뻔 했던 악한 음모에서 구원받은 그 날을 부림절이라는 명절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유대인들은 부림절을 즐거운 축제일 가운데 하나로 지킵니다. 이것이 간단하게 정리한 에스더서의 내용입니다.
3. 에스더서에 나타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더서는 성경 66권 가운데 한 권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이름이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 책을 정경으로 인정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비록 에스더서가 우리에게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어 언급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분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에스더에 나타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로, 에서더서가 보여주는 하나님은 역사의 중심인물이 아닌 주변인들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서론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당시 세계역사는 중동지역의 페르시아와 유럽의 아테네가 패권을 다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는 유대 민족은 세계사적인 차원에서 볼 때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범위를 유대인들의 역사로 좁혀서 생각해도 사실 당시 유대역사의 중심무대는 포로지에서 귀환한 팔레스타인 땅이었습니다. 에스더서에 나오는 인물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그 땅에 남은 유대 백성들입니다. 우리 민족으로 말하면 중국에 남은 조선족이나 러시아에 남은 고려인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실 당시에도 페르시아에 남은 유대인들은 전혀 주목받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에스더서는 바로 그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역사의 중심무대에만 관심을 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아니 어떤 면에서 우리 하나님은 변방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누가복음 3:1-2은 변방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당시는 티베리우스가 로마 황제로 재임중일 때입니다.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이었고, 헤롯 안티파스가 갈릴리의 분봉왕이었고,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이었으며,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역사의 중심인물들에게 임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이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종교지도자들에게 임하지도 않았습니다.
당시 하나님의 말씀은 빈 들에서 살고 있던 사가랴의 아들 침례요한에게 임했습니다. 침례요한은 그 때까지 크게 주목받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침례요한이 주목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후입니다. 그러므로 침례요한이 주목받는 인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주목받지 못하던 광야의 요한에게 임했습니다. 그 때부터 침례요한은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예언대로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결국 역사를 BC와 AD로 나누었습니다. 역사의 변방인물을 사용하여 세계역사의 흐름을 바꾸신 것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하나님은 세계역사의 중심 무대에서만 역사할 것 같습니다. 세계역사의 중심인물들만 상대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에스더서에 나오는 유대인들은 그리 주목받을만한 인물들이 아닙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런 멸망한 나라의 남은 민족들을 말살한다고 해도 세계역사에는 제대로 기록조차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역사의 변방에 있는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도 관심을 갖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 룻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룻은 유대인도 아니고 이방여인입니다. 그저 저주를 받은 것처럼 남편과 시아버지를 다 잃은 한 가정의 이방인 며느리일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무명의 여인의 계보에서 다윗이 태어나게 하시고 결국 메시아가 탄생하게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변방의 주변 인물들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둘째로, 에스더서가 보여주는 하나님은 역사의 배후에서 일하시는 분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에스더서의 가치를 폄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에스더서는 분명히 소중한 영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책입니다. 왜냐하면 에스더서는 우리에게 역사의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본래 눈에 보이는 존재가 아닙니다. 당연히 그 분이 일하시는 모습도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성경에 기록된 여러 사건들도 역사의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도록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사실 우리 눈에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영적인 통찰력을 가진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없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에스더서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나옵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 배후에서 일하시지 않았다고 한다면 도저히 설명하기 어려운 우연이 연속적으로 나옵니다. 우선 아하수에로의 부인 와스디가 폐위를 당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 후 유대인 출신인 에스더가 수많은 여인들을 제치고 왕비로 발탁됩니다. 에스더의 양아버지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 왕을 죽이려는 음모를 알아내고 왕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그 역사의 기록을 에스더가 유대인을 구해 달라고 탄원하기 전날 보았습니다. 에스더가 규정을 어기고 왕에게 나아갔지만 왕은 그런 에스더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 모든 일을 다 우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한 두 번이라면 우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치 모든 일을 계획한 듯 정확히 맞아 돌아가는 것은 결코 우연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에스더서에 나오는 유대인들의 구원의 역사는 역사의 배후에서 일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보시는 분입니다. 침묵하는 중에도 들으시는 분입니다. 에스더서에서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일상에서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까?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역사의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주변의 어떤 사람에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여러분 주변의 어떤 사람에게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도 우리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셋째로, 에스더서가 보여주는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결단을 사용하여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하만이 유대인을 몰살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을 알고 모르드개는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대궐 문 앞에서 통곡합니다. 에스더는 양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인지 알아보게 합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하만의 유대인 몰살계획을 알려주면서 왕에게 탄원하여 유대인을 구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처음에 에스더는 왕이 부르지 않으면 왕에게 나아갈 수 없는 법을 들어서 모르드개의 부탁을 거절합니다. 그러자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단호하게 말합니다. 본문 13-1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모르드개의 말을 듣고 에스더가 이렇게 회답합니다. 본문 16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에스더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유대인들에게 나를 위해 삼일간 금식하라고 전해주십시오. 나도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분들은 인간의 결단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합니다. 물론 인간의 헌신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역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들의 믿음의 결단을 사용하신다는 것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이렇게 강하게 요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약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결단하고 왕에게 나아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론 모르드개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다른 방도로 유대인들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모르드개와 에스더를 사용한 구원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순종했기에 하나님은 그들의 순종을 유대인들을 구원하는 도구로 쓰신 것입니다.
신구약성경은 우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입니다. 신구약성경 66권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많은 사건들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한 이야기입니다. 출애굽기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여호수아서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사용하여 가나안 정복전쟁을 승리로 이끄십니다. 사사기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사사들을 사용하여 고난당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십니다. 사무엘상하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위기 가운데서 구원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우리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다만 그런 주권적인 역사도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자들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역사의 변방으로 밀려났던 유대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본국에 돌아오지도 못한 채 낯선 땅에서 몰살당할 위기에 놓여 있던 불쌍한 백성들을 사랑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삶의 위기 상황에 놓여 있는 지극히 작은 자들의 탄식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역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역사의 배후에서도 일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한 우리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