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박경진 | ||
조회수 | 719 | ||
작성일 | 2016-06-26 12:57:15 |
은혜안에서 사명을 발견하라 |
은혜 안에서 사명을 발견하라(창세기 45:1-8)
서론 – 요셉이야기의 마지막 설교
6월 한 달 동안 우리는 요셉의 생애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지난주에는 외부 강사를 모셨기 때문에 요셉설교를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교회학교에서는 요셉이야기를 계속 다루었습니다. 요셉의 생애는 옷을 소재로 나누면 쉽게 정리가 됩니다. 창세기에 있는 요셉의 생애를 살펴보면 요셉의 생애는 크게 네 단계로 구분됩니다. 첫 번째 단계는 요셉이 채색 옷을 입고 살던 시기입니다. 요셉이 채색 옷을 입고 지냈던 시기는 아버지 집에서 사랑받던 어린 시절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요셉이 노예 옷을 입고 살던 시기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지냈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죄수 옷을 입고 살던 시기입니다.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 단계는 요셉이 총리 옷을 입고 살던 시기입니다. 요셉은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어 당시 중동지역과 북아프리카 전역을 기근에서 구원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 중에서 요셉이 총리 옷을 입고 사는 시기를 다룹니다.
요셉은 긴 고난의 시기를 잘 견디고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총리가 된 후에 요셉의 형들이 곡식을 구하러 애굽에 왔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단번에 알아보았지만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시험하기 위해 곡식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고 정탐하러 온 것이라고 몰아세웠습니다. 그러자 형들은 자신들은 결코 정탐꾼이 아니라고 하소연합니다. 이에 요셉은 형들에게 당신들의 결백을 입증하려면 막내 동생을 데려오라고 합니다. 요셉의 형들은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 야곱에게 전후 상황을 설명하지만 야곱은 베냐민을 보내지 않습니다. 요셉도 잃었는데 베냐민까지 읽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다시 곡식이 떨어지자 하는 수 없이 베냐민을 형들과 함께 애굽으로 보냅니다.
베냐민을 본 요셉은 그 정을 억제하기 어려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형들을 시험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곡식을 팔면서 자신이 아끼는 은잔을 베냐민의 자루에 몰래 넣게 합니다. 요셉의 형들이 떠난 후에 요셉은 신하들을 보내 형들을 잡아오게 합니다. 요셉이 아끼는 은잔이 발견되자 요셉의 형들은 할 말을 잃어버립니다. 결국 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이 모두 요셉의 종이 되겠다고 말하지만 요셉은 그 은잔이 발견된 베냐민만 종으로 삼겠다고 말합니다. 그 때 요셉의 형 가운데 한 명인 유다가 베냐민을 구하기 위해 간절하게 탄원합니다. 유다는 아버지 야곱의 입장에 서서 요셉에게 간절히 탄원합니다. 요셉도 죽었는데 베냐민마저 잃는다면 아버지 야곱은 살 수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절절한 심정으로 요셉에게 아룁니다. 그리고 자신이 대신 종이 되겠다고 자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유다의 간절한 탄원을 듣고 요셉은 모든 애굽 사람들을 다 물러가게 하고 비로소 형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본문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요셉은 그 때까지 억지로 정을 억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형 유다가 자기 동생 베냐민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대신 종이 되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형들이 드디어 온전히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얼마나 크게 울었는지 요셉의 울음소리가 애굽 사람에게 들렸고, 심지어 바로의 궁중에 들렸습니다.
요셉은 마침내 형들에게 자신이 요셉이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나는 요셉입니다.” 그리고 곧 아버지께서 살아 계신지 묻습니다. 본문 3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이 말씀에서 아버지께서 살아 계시느냐고 묻는 요셉의 질문은 좀 이상합니다. 지금까지 요셉의 형들은 여러 차례 아버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베냐민을 보내달라고 말한 이유도 아버지가 슬퍼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계속 아버지 이야기를 했는데 왜 요셉은 갑자기 아버지가 살아 계신지 묻고 있을까요? 여기서 아버지께서 살아 계시느냐는 말은 사실 아버지의 생사 여부를 묻는 것이라기보다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요셉은 지금까지 아버지의 안부를 물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정체를 숨겨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어지자 제일 먼저 아버지의 안부를 묻습니다. 또한 그 동안은 당신들의 아버지라고 말했지만 이제 요셉은 내 아버지가 잘 계시느냐고 묻습니다.
요셉의 말을 듣고 요셉의 형들은 놀라서 아무 대답도 못합니다. 그 때 요셉이 형들을 가까이 오게 합니다. 본문 4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두려움과 충격에 떨고 있는 형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요셉은 형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요셉은 위대한 고백을 합니다. 5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고백에는 요셉이야기 전체를 지배하는 중요한 신학적 입장이 담겨 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거나 한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신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자신을 먼저 이 곳에 보낸 것이라고 말합니다. 형들이 자기를 판 것도 다 온 가족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고 본 것입니다. 이 말을 한 번만 한 것이 아닙니다. 5-8절에서 요셉은 모두 세 차례나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자기를 보낸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다같이 7-8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셉은 계속 반복하여 하나님이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자신을 먼저 보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고 하나님이라고 강조합니다. 온 가족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자신을바로의 아버지로 삼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았으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로의 아버지로 삼았다는 말은 바로의 조언자로 삼았다는 뜻입니다. 요셉은 이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벌어진 일이라고 고백합니다.
물론 우리는 형들의 행동을 합리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형들이 요셉을 팔아버린 것은 분명히 악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형들의 악한 행동마저도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도구로 쓰셨습니다. 다즈(Dod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악한 목적과 부당한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심을 발견하는 것은 분명히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죄를 더 가볍게 여기거나 혹은 자신을 더 고상하게 여기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다(앨런 로스, 창조와 축복, 1007).” 요셉의 형들은 분명히 잘못을 행했습니다. 사랑하는 동생을 외국의 상인들에게 팔아버린 것은 용서받기 어려운 악한 행동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라는 관점으로 자기 인생의 고난을 재조명하고 재해석합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십니다.”
어떻게 요셉은 형들이 자신을 팔아버린 것까지 하나님의 섭리라고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이 부분을 잘 이해하는 것이 요셉 이야기의 핵심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이 문제를 잘 이해하려면 요셉의 생애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제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의 생애를 추적하면서 그의 인생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의 흔적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셉이 제일 처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던 사건은 어린 시절에 꿈을 꾼 것입니다. 창세기 37:6-7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6.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곡식 단이 일어서고 형들의 곡식 단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제 9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 다음에는 해와 달과 열 한 개의 별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이 바로 하나님이 요셉의 인생에 개입하신 첫 번째 사건입니다. 물론 이 때까지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인식하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그 꿈을 기억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그 꿈이 요셉에게 매우 의미있는 사건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요셉이 두 번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때는 보디발의 집에서 종노릇할 때입니다. 다같이 창세기 39:1-5을 읽어보겠습니다. “1.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에 팔려가서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디발의 종이 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의 주인 보디발도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한다는 것을 알 정도였습니다. 결국 요셉은 그 집에서 주인에게 인정을 받아 총무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총무가 되어 가정 살림을 맡은 후에 하나님은 요셉을 인하여 보디발의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요셉이 경험한 두 번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요셉이 세 번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때는 감옥에 있을 때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쳤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다같이 창세기 39:20-23을 같이 읽겠습니다. “20.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요셉은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께서는 감옥에 갇힌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셨습니다. 여기에 나온 인자를 히브리어로 헤세드라고 합니다. 헤세드는 아무 조건 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요셉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조건 없는 은혜를 체험합니다. 그래서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십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는 보디발에게 신임을 얻게 하셨다면 이번에는 간수장에게 은혜를 입게 합니다. 간수장은 모든 일을 요셉에게 맡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또 한 가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합니다. 요셉이 감옥에 있는 동안 애굽의 고위관리 두 사람이 감옥에 들어왔습니다. 옛날 주인이었던 보디발은 요셉을 붙여 그들을 섬기게 합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각기 꿈을 꾸고 근심어린 눈빛을 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해몽해 줄 것이라고 하면서 꿈의 내용을 말해보라고 합니다. 다같이 창세기 40:9-11을 보겠습니다. “9.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10.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11.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요셉은 그 꿈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그 꿈에서 세 가지는 사흘을 가리킵니다.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을 사면하고 다시 술 맡은 관원으로 복직시킬 것입니다.” 요셉이 꿈을 잘 해석하는 것을 보고 떡 굽는 관원장도 자신의 꿈을 이야기합니다. 창세기 40:16-17을 보겠습니다. “16.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좋은 것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17.맨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요셉은 그 꿈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세 광주리는 사흘을 가리킵니다.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을 처형할 것입니다.” 요셉이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한대로 사흘 후 바로의 생일 날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고 떡 굽는 관원장은 처형당합니다. 요셉은 이 사건을 겪으면서 아마 전율할 정도로 놀랐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꿈을 해몽하게 하시고 그 해몽대로 이루시는 것을 보면서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뼈저리게 체험했을 것입니다.
요셉이 네 번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건은 바로의 꿈을 해몽한 것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자신의 해석대로 복직되는 것을 보고 요셉은 드디어 누명을 벗고 출옥할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셉이 그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당신이 복직되면 나를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사람은 요셉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애굽 왕 바로가 꿈을 꾸었습니다. 우리 다같이 창세기 41:1-7을 읽어보겠습니다. “1.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2.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3.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가에 서 있더니 4.그 흉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5.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6.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7.그 가는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즉 꿈이라” 그 꿈을 꾸고 바로는 애굽의 점술가와 지혜자들을 모두 불렀지만 아무도 해석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 때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떠올리고 바로에게 요셉을 추천합니다. 바로에게 불려온 애굽은 그 자리에서 바로의 꿈을 해석합니다.
“바로께서 꾸신 두 꿈의 뜻은 한 가지입니다. 일곱 좋은 암소와 일곱 좋은 이삭은 둘 다 칠 년을 가리킵니다. 그 후에 올라온 흉한 일곱 소와 속이 빈 일곱 이삭도 칠 년을 가리킵니다. 이 꿈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하실 일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앞으로 칠 년 동안 애굽에 풍년이 들 것이고, 그 후 칠 년 동안은 애굽 전역에 큰 흉년이 들 것입니다. 후에 든 흉년이 너무 심하여 이전에 풍년을 잊어버리고 이 땅은 기근으로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칠 년 동안 풍년이 들었을 때 곡식을 거두어 저장하여 칠 년 간의 흉년에 대비하십시오. 그러면 이 나라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셉의 해석에 감동한 바로는 그 자리에서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삼습니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요셉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를 온전히 확신하게 됩니다. 비록 형들에게 팔려 애굽 땅에 종으로 왔지만 그런 자신과 늘 함께 하셔서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섭리를 확신하게 됩니다.
요셉이 다섯 번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건은 요셉의 형들이 와서 자신에게 절하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흉년이 들자 요셉의 형들도 애굽으로 곡식을 사러 옵니다. 다같이 창세기 42:6-9을 보겠습니다. “6.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7.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8.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9.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곡식을 사러 온 요셉의 형들은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에게 엎드려 절합니다.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요셉은 단번에 형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자신에게 엎드려 절하는 형들을 보며 요셉은 어린 시절에 꾸었던 꿈을 떠올렸습니다. 그 때는 막연하게 꾸었던 꿈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꿈을 정확히 이루시는 것을 보고 요셉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섭리에 놀라게 됩니다.
요셉은 자신의 인생 전체에 걸쳐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를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희미했지만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분명하게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가 역사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자신을 애굽으로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나온 고백이 바로 오늘 본문 7-8절에 나오는 위대한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요셉은 자신이 받은 은혜를 사명으로 이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런 은혜를 베푸신 목적은 바로 자기 민족을 구원하려는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어떻게 요셉은 형들이 자신을 팔아넘긴 것까지 하나님의 섭리라고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이 부분을 잘 이해하는 것이 요셉이야기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바르게 파악하는데 대단히 중요합니다. 형들에게 팔려 애굽에 가면서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지만 요셉은 그 모든 인생의 여정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체험했습니다. 요셉은 그런 은혜들을 쉽게 망각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그 은혜들을 쉽게 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형들이 자신에게 절할 때 어린 시절의 꿈을 떠올린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어린 시절에 꿈으로 보여주신 하나님의 작은 은혜도 잊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들을 경험하면서 요셉은 마침내 이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의 섭리적 은혜였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자신을 애굽으로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위대한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요셉은 이렇게 고난까지도 다 하나님의 섭리로 이해하는데 왜 어떤 사람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할까요? 그 차이는 바로 해석의 차이입니다. 영적으로 잘 성장하려면 자신의 인생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하나님의 은혜를 연결시키는 해석작업이 필수적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런 해석작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자신의 인생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은혜의 의미가 무엇인지 늘 묵상해야 합니다. 인생의 고난을 만났다면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기에 힘써야 합니다. 고난 중에 있을 때는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상황을 말씀으로 조명해 보아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자신의 현실을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로 자신의 상황을 해석해 내야 합니다. 그런 작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면 영적인 통찰력이 생깁니다. 그러면 비로소 하나님의 섭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의 삶에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에게 임한 그 은혜 안에서 사명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은혜를 주신 것이 바로 이런 사명을 위한 것이었구나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지난 날을 한 번 회상해 보십시오. 인생의 어려운 고비가 있었을 때마다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임하지 않았습니까?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나의 작은 신음소리마저 들으시는 우리 하나님의 세밀한 돌보심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내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곤란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전능자의 손길이 나와 함께 했음을 체험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때로는 설교를 통해, 때로는 말씀묵상을 통해 나를 일깨워주지 않으셨습니까?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임한 우리 하나님의 그 지속적인 은혜를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이제 그 은혜 안에서 여러분을 향한 사명을 발견해 보십시오. 요셉은 자기 민족을 기근에서 구원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었습니다. 이제 여러분도 여러분의 인생을 바르게 해석하십시오. 여러분이 경험한 그 무수한 사건들을 우리 하나님의 은혜라는 관점으로 바르게 해석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은혜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은혜 안에서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을 발견하여 그 사명에 여러분의 남은 인생을 온전히 헌신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