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정준화 | ||
조회수 | 4115 | ||
작성일 | 2017-02-26 15:52:12 |
바벨의 두 가지 죄 |
바벨의 두 가지 죄(창세기 11:1-9)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바벨탑 사건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언어의 혼잡입니다. 오래 전 영어공부 하다가 힘들 때마다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을 원망했었습니다. “거 왜 쓸데없이 그런 탑은 쌓아가지고 지금 이렇게 우리를 고생시키냐?” 영어공부하느라 고생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영어공부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사람들도 드물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들도 드물 것입니다. 시간과 돈을 투자한 것을 생각하면 사실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어를 잘 못하는 편입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렇게 영어 공부하느라 고생하다 보면 바벨탑 사건이 생각납니다. 바벨탑 사건에 대해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저 단순하게 인류의 언어가 혼잡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 정도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핵심은 그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 말씀이 인간의 언어가 지금처럼 다양해진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창세기의 흐름을 보면 이 말씀에는 그 보다 훨씬 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 말씀에 담긴 메시지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의 말씀의 흐름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먼저 창세기 1:28을 같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후 인간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에는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에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가 나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대리자, 곧 청지기가 되어 세상을 잘 관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욕망에 미혹당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합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최초의 인간은 자연만물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범죄하여 에덴에서 추방당했습니다.
그 후 인간 세상은 온갖 범죄로 물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담의 큰 아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가인의 후손인 라멕은 사람을 죽이고서도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런 인간의 연속적인 범죄가 창세기 4장에 나옵니다. 그 다음에 창세기 5장에 가면 아담의 계보가 나옵니다. 창세기 5장을 펴시고 눈으로 죽 이 계보를 훑어보십시오. 이 계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인간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생육하고 번성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긍정적인 메시지는 창세기 6장에서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창세기 6:5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사람의 죄악이 땅에 가득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한 상태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6-9장까지는 노아의 홍수 사건이 나옵니다.
노아의 홍수 사건은 하나님께서 결국 자신이 창조하신 땅을 심판하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은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자손을 많이 낳으라는 말씀만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을 생육하고 번성시켰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노아의 홍수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세대를 심판하셨습니다. 노아의 홍수는 노아와 그 가족들, 그리고 선택받은 동물들을 제외한 모든 생물을 땅에서 쓸어버렸습니다. 노아의 홍수가 끝난 후 하나님은 노아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우리 창세기 9:1을 같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이 명령은 처음에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던 명령과 동일한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했던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노아와 무지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창세기 9장까지 끝이 납니다. 그 다음에 창세기 10장에는 다시 족보이야기가 나옵니다. 창세기 5장에는 아담의 계보가 나왔다면 이제 창세기 10장에는 노아의 족보 이야기가 나옵니다. 왜 노아의 홍수 이후에 다시 족보를 다룰까요? 족보가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세 아들인 셈과 함과 야벳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따라 말 그대로 생육하고 번성합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통하여 다시 이 땅에 사람들을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십니다. 그런 사실을 보여주기 위하여 노아의 홍수 이후에 다시금 족보를 다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진행되다가 갑자기 바벨탑 사건이 나옵니다. 사실은 창세기 10장과 11장 전체가 다 노아의 족보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노아의 세 아들 가운데 야벳과 함의 족보를 다룬 다음에 바벨탑 사건을 다룹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셈의 족보를 다룹니다. 노아의 족보 사이에 바벨탑 사건이 끼워져 있는 형국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노아의 홍수 이후에 세상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노아 후손들의 족보만 보면 그렇게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 아담의 계보 이후에 온 세상이 죄에 물든 것처럼 지금 노아의 후손들도 죄로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노아의 후손들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바벨탑 사건입니다. 바벨탑 사건은 인간의 죄의 결정판입니다. 이 바벨탑 사건을 통해 하나님을 거역한 한 시대를 마무리하고 하나님은 셈의 족보를 통하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세우십니다. 그것이 창세기 1-11장 전체의 역사입니다.
오늘 저는 그 중에서 바벨탑 사건의 의미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이제 오늘 본문을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1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그 때까지는 온 땅의 언어가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2절을 보면 사람들이 동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합니다. 본문 2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2절은 세 개의 동사를 사용하여 유목민들의 모습을 잘 표현합니다. “그들은 옮기다가 만나 거류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사람들이 동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동쪽은 자주 죄와 연결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나서 에덴의 동쪽으로 쫓겨났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살해하고 떠난 곳도 동쪽이었습니다. 롯이 아브라함과 헤어질 때, 동쪽으로 가서 소돔과 고모라 지역에 정착해 살다가 모든 것을 잃고 떠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창세기에서 동쪽은 자주 죄와 연결된 곳입니다. 이런 배경을 생각하면 이 사람들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을 암시적으로 표현합니다.
옮겨간 이 사람들이 시날 평지에서 무슨 일을 합니까? 본문 3-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이 사람들은 벽돌을 만들어 성읍과 탑을 건설하려고 하였습니다. 최대한 높이 건설하여 그 탑의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자신들의 이름을 내는 것입니다. 둘째는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높은 탑을 쌓는 두 가지 목적 속에 이들의 죄가 숨어 있습니다. 오늘 제가 주목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의 두 가지 죄입니다. 이 두 가지 죄는 단지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만의 죄가 아닙니다. 이 두 가지 죄는 우리 모든 인간의 죄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평생 싸워야 할 치명적인 죄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두 가지 죄의 속성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죄의 속성을 정확히 알아야 바르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이 사람들의 첫 번째 죄는 교만입니다. 이들은 그 탑을 꼭대기에 닿게 하여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자 했습니다.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지기 위해서입니다. 사탄이 하와를 유혹할 때 했던 말을 생각해 보십시오. 창세기 3:5에서 사탄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사탄은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못 먹게 하신 것이 마치 인간이 하나님처럼 될 것을 시기하신 하나님의 계략인 것처럼 말합니다. 사탄은 선악과를 먹으면 오히려 신적인 능력을 갖게 된다고 하와를 미혹했습니다. 하와는 결국 그 말에 미혹 당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교만은 단순히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더 우월하게 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넓게 본다면 그런 것도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교만의 핵심은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이사야 14:12-15은 교만의 전형을 잘 보여줍니다. “12.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15.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여기서 계명성은 바벨론의 왕을 가리킵니다. 당시 바벨론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바벨론의 왕은 교만한 마음을 품고 자신을 하나님처럼 생각했습니다. “하늘에 올라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펴겠다.”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겠다.”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겠다.” 이렇게 교만을 떨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에게 심판을 선고하십니다.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 찍히고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질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범죄한 인간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죄입니다. 우리 로마서 1:28을 같이 보겠습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마음에 하나님을 두면 하나님을 왕으로,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 자기 마음에서 하나님을 끌어내립니다. 하나님을 끌어내렸기 때문에 마음에 공백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때 자신을 그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주인이 되려는 것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왕이 되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근원적인 죄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주인 노릇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은 얼마나 연약한 존재입니까? 인간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인간이 자기 마음의 주인 노릇을 하면 그 일, 곧 자기를 다스리는 일을 제대로 감당할 재간이 있을까요?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리고 사시나요?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인간이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면 하나님이 그를 그냥 내버려 두신다는 것입니다. 이 자체가 가장 큰 심판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다스리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십니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벌어지겠습니까?
우리 로마서 1:29-32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왜 이런 결과가 벌어졌습니까?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인간들을 보고 하나님께서 그냥 내버려 두셨더니 이런 결과가 벌어졌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지 않을 때 이런 무서운 결과가 우리의 실제 삶에서 벌어집니다.
우리는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배웁니다. 고대 바벨론에서, 로마에서, 절대 권력을 가진 왕들은 자신을 신적 존재로 높였습니다. 그 결과는 무수히 많은 백성들이 그 권력에 유린당한 것입니다. 이런 일은 고대에만 벌어진 것도 아닙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왕은 천황이라고 칭하면서 자신을 신적 존재로 높였습니다. 전국 곳곳의 신사에서 자신을 참배하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천황의 이름으로 아시아 전역을 침략하는 끔찍한 전쟁을 벌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고, 수많은 여성들이 유린당했습니다. 결국 자신들도 원자폭탄의 폭격을 맞는 참혹한 결과가 벌어졌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한 동안 그냥 내버려두심으로 심판하십니다. 그 결과는 로마서 1장에 나온 것처럼 끔찍한 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을 때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삼을 때 인간은 가장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교만은 하나님을 자기 마음에서 끌어내리고 자신이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큰 교만이 없습니다. 그것보다 더 큰 죄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죄에 빠지지 마십시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죄에 빠지지 마십시오.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고, 내가 하나님이 되려는 교만을 멀리하십시오. 인간의 약함을 인정하십시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십시오. 우리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십시오. 우리 하나님을 내 삶의 유일하신 왕으로,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 뜻에 따라 사시길 축원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둘째로, 바벨의 두 번째 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불순종한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은 이유는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한 후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창세기 1:28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분명히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려면 흩어져야 합니다. 또한 노아의 홍수 이후에도 동일한 명령을 하셨습니다. 창세기 9:1을 같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이 말씀은 9:7에 한 번 더 나옵니다.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하나님은 반복적으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가득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려면 온 땅에 흩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땅에 가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은 흩어지지 않기 위해 탑을 쌓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놓고 불순종한 것입니다. 바벨의 두 번째 죄는 바로 불순종입니다.
에덴동산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엄명을 내리셨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반박하였습니다.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속였습니다. 또한 사탄은 하와의 욕망을 부추겼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유혹하였습니다. 결코 죽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는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아담과 하와는 결국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의 죄는 동일한 패턴으로 반복됩니다.
다시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의 불순종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은 그 명령을 정면으로 어겼습니다. 땅에 충만하라고 했지만 흩어지지 않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이 사람들의 불순종은 결국 어떤 결과를 유발했습니까? 본문 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하나님은 사람들이 건설하는 성읍과 탑을 보려고 하늘에서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이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다는 표현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지금 인간들은 하늘에 닿는 탑을 쌓겠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늘에서 그 탑을 볼 수가 없어서 땅으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하늘에 닿는 탑을 쌓는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임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고 교만한 존재입니다. 자신의 주제파악도 못하고 감히 하나님께 도전하는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본문 5절에서는 인간의 그런 어리석음을 보여주기 위해 사람을 뜻하는 단어도 아담을 사용합니다. 히브리어로 사람을 뜻하는 단어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아담이라는 단어는 흙을 뜻하는 아다마에서 온 것입니다. 그것은 곧 인간이 흙에 불과한 연약하고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결국 흙에 불과한 어리석은 인간이 감히 창조주 하나님께 도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할까요? 한 번 우리 자신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할까요? 우리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면 내가 불행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인생이 무미건조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대로 살면 내 삶이 오히려 고통스러워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종종 말씀을 어깁니다. 한 번만 어기면, 하나님이 한 번만 눈감아 주시면 잘 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부정직한 일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냥 하나님이 한 번만 눈감아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온전히 말씀대로 사는 것은 너무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옥죄이고 얽매고 구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연 정말 그럴까요? 그것이 사실일까요?
우리 신명기 10:12-13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2.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그 중에 13절을 주목해 보십시오.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를 괴롭히려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을 고통스럽게 하려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시편 35:27을 같이 보겠습니다.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기꺼이 노래 부르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그의 종의 평안함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는 말을 그들이 항상 말하게 하소서” 그 말씀의 중간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그의 종의 평안함을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NIV성경은 이 구절의 평안함을 well being으로 번역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 하나님은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종들의 웰빙을 기뻐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진실로 행복해 집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따라 살면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행복한 삶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행복한 삶은 우리 모두의 행복한 삶입니다. 신명기 말씀을 언뜻 보면 네 행복이라고 하여 개인의 행복을 강조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너는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결국 여기서 네 행복이란 나 개인의 행복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행복입니다. 공동체가 다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더불어 행복하게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공동체적으로 다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벨의 두 가지 죄는 교만과 불순종입니다. 이것은 단지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만의 죄가 아닙니다. 이 두 가지 죄는 우리 모두가 평생 싸워야 할 근원적인 죄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교만의 죄와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교만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실 때 인간은 가장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한 불순종의 유혹과 싸워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불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불행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모두가 행복해 집니다. 나 한 사람만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해집니다. 더불어 행복해집니다. 교만과 불순종, 이 두 가지 죄는 우리가 평생 싸워야 할 근본적인 죄악들입니다. 우리를 미혹하는 근원적인 죄와 일평생 싸우십시오. 우리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로 지금 결단하십시오. 매일 결단하십시오. 그래서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가족들 모두가 주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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