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정준화
조회수 647
작성일 2017-06-01 17:35:21
기도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출애굽기 14:10-14)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구약성서의 유명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바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사건입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본문은 홍해를 건너기 직전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저는 오늘 이 본문을 ‘기도’라는 관점으로 묵상하려고 합니다. 우선 본문의 내용과 문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은 14장 10-14절이지만 흐름을 알기 위해서 앞뒤 내용 전체를 먼저 정리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과 관련된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려 430년이나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36년간 지배를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상처의 흔적이 여전히 우리 삶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열 배 이상 긴 세월동안 이집트의 지배를 당한 이스라엘은 얼마나 더 힘든 세월을 보냈겠습니까? 어쩌면 그들에게는 노예생활이 더 익숙한 상태였을지도 모릅니다. 이집트를 탈출한다는 것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로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면서 그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 곧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 그대로 출애굽시켜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로를 찾아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바로, 곧 파라오가 순순히 모세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를 리가 없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을 이집트 땅에 내리셨습니다. 그 열 가지 재앙은 이집트 사람들이 섬기던 모든 신들을 차례로 무력화시켰습니다.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은 이집트 사람들이 태양신의 대리자로 생각했던 파라오의 아들조차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일반 백성들의 장자부터 파라오의 장자까지 이집트의 장자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했습니다. 결국 파라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어쩔 수 없이 허락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를 떠나는 대장정을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닷가에 장막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각한 위기가 발생하였습니다.

     

  파라오가 마음을 바꾸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 파라오는 처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내보낼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아들을 비롯한 이집트의 모든 장자가 죽는 것을 보고 일시적으로 공황상태에 빠져 출애굽을 허락하였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14:5을 보면 이집트 사람들의 속마음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5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그 백성이 도망한 사실이 애굽 왕에게 알려지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그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이르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 하고”

     

  이제 파라오는 곧 군대를 소집하여 병거를 갖추고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합니다. 7절을 보면 파라오는 이집트의 모든 병거를 다 동원했다고 하였습니다. 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니 지휘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결국 파라오와 이집트의 군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을 친 바알스본 맞은편까지 추격하였습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이집트의 군대가 가까이 온 것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였습니다. 10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것입니다.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본문 10-14절에는 자신들을 추격한 파라오의 군대를 보고 이스라엘 백성이 보이는 반응과 지도자인 모세가 보이는 반응이 함께 나타나고 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그들은 파라오의 군대를 보자 두려움에 빠져서 모세를 원망합니다. 본문 11-12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는 말이 나옵니다. 11-12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이집트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여기에서 죽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이집트 사람을 섬기며 살겠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불평을 종합하여 12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집트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심각한 위기상황을 만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를 탈출한 것 자체를 문제 삼아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완전히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13-1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모세는 이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 상황만 생각하면 모세의 믿음은 매우 놀랍게 보입니다. 그러나 모세 역시 처음부터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모세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계속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열 가지 재앙을 목격하면서 비로소 하나님을 온전히 믿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본문 15-1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두 가지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고, 둘째는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바닷물이 갈라지게 하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바다 위로 손을 내밀자 하나님은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셔서 바다를 마른 땅으로 만드셨습니다. 

     

  그 다음 이야기는 여러분이 이미 다 아시는 그대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다 가운데로 난 길로 홍해를 건넜고, 이집트의 군대는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다가 바닷물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그 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에 전무후무한 기적의 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기적적인 방법으로 구원하셨습니다. 그 날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이집트 사람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온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였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바다는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를 건넜다는 것은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였다는 뜻입니다. 그 날 홍해는 죽음의 바다가 될 뻔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죽음의 바다가 될 뻔 한 홍해가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로 말미암아 이 날에 생명의 바다로 바뀌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오늘 이 말씀을 ‘기도’라는 관점으로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와 모세의 기도를 비교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자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과 모세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매우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도하지 않고, 모세는 기도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기도했고, 모세도 기도했습니다. 본문 10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바로와 그의 군대가 가까이 왔을 때 이스라엘 자손은 심히 두려워하며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는 말이 바로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도 분명히 기도했습니다. 이제 15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한 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모세도 역시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모세나 기도했다는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이들의 차이점은 기도 후의 행동에 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 후에 어떻게 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11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도한 후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뜸 출애굽 자체를 원망합니다. 왜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곳에서 죽게 하느냐고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본문 12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말합니다. “우리를 내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다.” 12절 마지막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분명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기도 후에 즉각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애굽에서 탈출시킨 것 자체를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들의 원망은 사실상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실제로 출애굽 시킨 것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모세는 다만 그 일의 대행자 역할을 한 것뿐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대행자 역할을 잘 못 했다고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면 아예 출애굽 자체를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렇게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어떻게 했을까요? 본문 13-1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3.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두려움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달리 모세는 담대하게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니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 모세는 담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두려움에 빠진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다만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라고 권면합니다.

     

  똑같이 기도했는데 기도 후의 행동은 너무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도 후에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기도 후에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차이가 발생한 이유가 뭘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했습니까? 아닙니다. 열 가지 재앙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임했습니다. 모세만 본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분명히 하나님의 능력을 목격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요? 그 차이는 바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과거에 기도 응답을 경험한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기도 응답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모세도 처음에는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못했습니다.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났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즉각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즉석에서 두 가지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두 가지 기적은 지팡이가 뱀이 되는 것과 손에 나병이 걸렸다가 낫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사실 그 후에도 사명을 계속 거부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자신은 말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사명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결국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작정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모세는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갑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야훼, 곧 “나는 나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는 사실, 그 하나님이 또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을 보면서 하나님은 애굽의 우상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전능자라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모세는 그렇게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여전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나타나셨다는 사실만 알았습니다. 열 가지 재앙을 함께 보았지만 그 의미를 바르게 해석하여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기회로 삼지를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사실 출애굽과 광야생활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많이 체험한 사람들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많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으면서도 여전히 전혀 변화되지 않은 사람들도 참 드물 것입니다. 그들은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끊임없이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도 응답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알아가야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참 백성으로 삼기 위해서 지금 이 위대한 역사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 하나님께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적을 체험하는 것으로만 그쳤습니다. 그런 기적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해야 하는데 그렇게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이 바르게 성장하려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과 아울러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동일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어도 그 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지 못하면 신앙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바르게 해석해야 합니다. 바른 해석을 통하여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이  다음에 비슷한 상황을 만났을 때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모세는 처음부터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물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지키시는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하나님을 점점 더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홍해를 앞에 두고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니 그 구원을 지켜보라고 담대하게 외칩니다. 어떻게 그리 담대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조상들과 맺은 약속을 잊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을 찾아오신 분입니다. 당신의 전능하심으로 애굽을 심판하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 자신들과 동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행하실 일이 기대가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친 것입니다.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을 살다 보면 어려운 일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고난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고난이 있습니다. 산이 가로 막고 있는 것 같은 막막함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 때는 여러분, 여러분의 지난날을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찾아오신 하나님의 역사를 떠올려 보십시오.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하며 기도했던 그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하나님의 기적적인 응답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때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배웠습니까?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그 때 단지 기도응답으로 끝났습니까? 아니면 그 기도 응답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배웠습니까? 만약 그 때 하나님을 깊이 만났다면 이제 그 하나님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지인 손가락 간증). 그 때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역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늘 동일하신 분입니다. 늘 한결 같으신 분입니다. 다시 한 번 그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십시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응답하실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기도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심지어 믿지 않는 사람도 “아이고 하나님 살려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런 수준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저 살려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는 곧 바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 기도에 머물지 마십시오. 믿지 않는 사람도 구하는 그 정도의 기도에 머물지 마십시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지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기도의 대상을 깊이 신뢰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런 식으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모세처럼 하나님을 향한 신뢰에 기초하여 기도합니다. 전에 내 인생에 역사하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도 역사하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린아이 상태에 머물러 있지 마십시오. 늘 초신자처럼 기도하지 마십시오. 초신자 때는 그저 어려운 일이 닥치면 막연하게 도와달라고 기도합니다. 사실 그 때는 기도의 대상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막연하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 자라가면서 이제 우리가 경험한 그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전에 내 인생 가운데 역사하신 그 하나님, 그 신실하신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막연한 기도를 드려서는 안 됩니다. 그저 내 기분에 따라 기도했다가 원망하고 기도하면서  불평하는 그런 기도를 드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그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 가운데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기도 응답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도 응답을 통해 하나님을 점점 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성장이란 사실상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가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그의 서신서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벧후 3:18).” 

     

  응답받는 기도를 드리려면 우리는 우리 기도의 대상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기도의 대상을 아는 것은 단순히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으로 아는 것을 넘어서 경험으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면 그 기도응답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더욱 깊이 묵상하십시오.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신 분인지, 얼마나 은혜로우신 분인지 점점 더 깊이 알아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 경험이 점점 쌓여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게 되면 그 때 비로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믿음으로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응답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여러분의 지식이 점점 자라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점점 자라서 이제 어떤 상황에서든지 우리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믿음으로 하나님의 임하심을 기다리십시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오.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믿음의 기도로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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