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정준화 | ||
조회수 | 901 | ||
작성일 | 2017-06-04 13:31:30 |
경고 |
경고(사사기 2:6-17)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축구경기의 심판은 두 개의 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옐로우카드이고, 다른 하나는 레드카드입니다. 옐로우 카드는 경고를 뜻하고, 레드카드는 퇴장을 뜻합니다. 만약 어느 선수가 지나치게 위험한 반칙을 하면 심판은 그 선수에게 옐로우카드를 제시합니다. 경고하는 것입니다. 만약 한 번 더 이런 위험한 반칙을 하면 퇴장시키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만약 실제로 그 선수가 비슷한 반칙을 또 하면 두 번째 옐로우카드를 제시하고 곧 바로 레드카드를 제시합니다. 그러면 그 선수는 경기장에서 퇴장해야 하고 더 이상 그 경기에서 뛸 수 없습니다. 경고는 말 그대로 경고입니다. 한 번 더 반복하면 퇴장시키겠다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경고를 받은 선수는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칫하면 퇴장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경고”입니다. 하나님은 사사기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매우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그 경고에 귀를 기울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사기 2장이지만 사사기의 다른 말씀도 함께 찾아보면서 우리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사사기의 시대적 배경(2:6-10)
사사기의 시대적 배경은 조금 전에 읽은 본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모세는 출애굽과 광야생활을 인도하는 지도자로 이스라엘을 섬겼고,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전쟁을 주도하였습니다. 사사기는 바로 그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벌어진 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사시대는 바로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시작하여 사울을 통한 왕정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대략 주전 1350년경부터 주전 1030년경까지입니다. 사무엘까지 포함하면 사사들의 숫자는 모두 13명이었습니다. 사사라는 말은 재판관이라는 말입니다. 사사들이 백성들을 재판하는 일도 했었기 때문에 이런 명칭을 붙였습니다. 이 시대는 세계사적으로 본다면 청동기 시대에 해당됩니다. 한반도에 청동기 문명이 보급된 직후에 해당됩니다. 사사시대 직후에 그리스에서는 도시국가가 형성되었습니다. 사사시대는 대략 그런 시대에 해당됩니다.
2. 사사기의 영적 상황(21:25, 17:6; 18:1; 19:1)
이제 사사시대의 영적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사시대의 영적 상황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말씀이 사사기 후반부에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먼저 사사기 17:6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계속해서 18:1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그 때에 거주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그 때까지 기업을 분배 받지 못하였음이라.” 이제 19:1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마지막으로 21:25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스라엘에 왕이 없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말 그대로 당시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다는 뜻이고, 다른 한 가지는 하나님을 그들의 왕으로 섬기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둘 다 사실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왕정시대가 시작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아직 왕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또한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에 빠져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인간 왕도 없었고 하나님 왕도 없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였습니다. 당연히 사회는 매우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것이 한 문장으로 표현된 사사시대의 영적 상황이었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이 어느 정도 혼란스러웠는지를 보여주는 두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미가라는 사람이 임의로 제사장을 세우는 모습입니다. 사사기 17:10-11을 같이 보겠습니다. “10.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리라 하므로 그 레위인이 들어갔더라 11.그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주하기를 만족하게 생각했으니 이는 그 청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 같이 됨이라.” 미가는 자기 집에 신당을 만들어 놓고 그 곳에 우상을 세워놓았습니다. 그리고 레위 지파 제사장을 돈 주고 고용하여 자기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가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한 이스라엘 사람이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우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레위인을 돈 주고 고용하여 그 우상을 관리하는 일을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런데 그 레위인은 만족합니다. 왜냐하면 먹고 살 길이 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적 타락상을 잘 보여줍니다.
두 번째 사건은 충격적인 집단강간과 시신훼손 사건입니다. 어떤 레위 사람이 자기 첩을 데리고 처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현지의 불량배들이 그 사람의 첩을 집단으로 강간합니다. 그 레위사람은 이 사건을 고발하기 위해 자기 첩의 시체를 열 두 토막을 내어 이스라엘 사방에 보냅니다. 이 사건은 종교적으로 크게 타락했던 당시 이스라엘이 도덕적으로도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이 사건으로 결국 그 불량배들이 속한 베냐민 지파와 이스라엘의 나머지 지파 사이에 내전이 벌어집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그 정도로 극심하게 타락했습니다. 종교적으로도 타락했고 도덕적으로도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사사기 마지막 부분에 “그 때에는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3. 왜 이런 영적 혼란이 벌어졌는가?(2:10)
이제 왜 이런 영적 혼란이 벌어졌는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타락에 빠진 원인이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사사기는 가장 근원적인 원인을 사사기 2:10에 밝히고 있습니다. 2:10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여호수아가 죽은 후, 여호수아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도 모두 죽었습니다. 그 다음에 이스라엘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결국 몰락의 길로 가게 된 것입니다.
4. 악순환의 반복(배교-압제-간구-구원)
오늘 본문에는 앞으로 사사기에서 전개될 영적 악순환이 간략하게 요약되어 있습니다. 악순환의 첫 번째 단계는 이스라엘의 배교입니다. 본문 11-1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11.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12.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13.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했습니다. 그 악은 바로 바알을 섬긴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습니다. 그 다른 신들은 바로 가나안 족속이 섬기던 바알과 그의 아내 아스다롯입니다. 바알 신을 숭배하는 사람은 풍요를 약속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볼 때 바알 신은 매력적이었습니다. 그 신을 섬기면 가나안에서 풍요로운 삶을 살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것은 결국 우상숭배이며 하나님을 떠난 악한 일에 불과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 백성은 배교한 것입니다.
악순환의 두 번째 단계는 배교한 이스라엘이 이방민족의 압제를 당하는 것입니다. 본문 14-15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4.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15.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배교의 결과는 이방민족들의 압제를 당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배교하자 하나님은 그들을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수아 1:8-9과 완전히 정반대입니다. 우리 함께 여호수아 1:8-9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8.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9.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네가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렸습니다. 완전히 정반대의 상황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런 재앙을 예고하셨습니다. 사사기 2:3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하나님은 이미 이방민족을 쫓아내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배교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알 신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배교의 결과로 이스라엘은 심한 압제를 당하였습니다. 15절의 마지막 문장은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악순환의 첫 번째와 두 번째가 배교와 압제라면, 세 번째 단계는 간구입니다. 본문 18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 하반절을 보시면 이스라엘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이방 민족에게 압제를 당하면 이스라엘은 슬퍼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악순환의 네 번째 단계는 구원입니다. 조금 전에 읽은 18절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슬피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사사들을 세워서 이스라엘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사사기에는 이렇게 배교, 압제, 간구, 구원의 악순환이 계속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그 중에 몇 가지 사례만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사사기 3:7-11을 같이 보겠습니다. “7.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배교) 8.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압제) 9.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간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구원) 10.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11.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이 말씀에도 역시 배교, 압제, 간구, 구원의 싸이클이 나타납니다.
이 사사기의 악순환은 비단 이 한 사건에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도 계속 동일한 싸이클이 반복됩니다. 3:12-15을 보겠습니다. “12.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배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13.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한지라 14.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열여덟 해 동안 섬기니라(압제) 15.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간구)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구원)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통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이 사건에서도 배교, 압제, 간구, 구원이라는 똑같은 싸이클이 반복되었습니다.
이제 사사기 4:1-3을 보겠습니다. “1.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배교) 2.여호와께서 하솔에서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으니(압제) 그의 군대 장관은 하로셋 학고임에 거주하는 시스라요 3.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간구).” 그 다음에 하나님은 여선지자 드보라를 세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한 동안 그 땅에는 평화가 찾아옵니다. 5:31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이와 같이 사사기는 계속 우리에게 반복되는 싸이클을 보여줍니다. 그 싸이클은 배교, 압제, 간구, 구원의 싸이클입니다. 이런 싸이클을 반복하면서 이스라엘은 계속 몰락의 길을 걸어갑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스라엘이 이런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주된 원인은 바로,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모르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잊어버렸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사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렇게 볼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은 고난에 처하면 다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것을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완전히 잊은 것 같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사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에 처하면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사사기 2:10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고 선언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난을 당하면 절대자를 찾습니다. 그러다가 고난이 사라지면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런 것은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911테러가 발생했을 때,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았습니다. 기독교 국가이기 때문에 그들의 머리 에는 막연하게나마 하나님이 계셨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때 뿐이었습니다. 다시 안정되자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런 것을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 모습을 보고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언약의 하나님으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아 그 후손들에게도 복을 주시겠다는 언약이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이삭, 야곱, 요셉과 그 언약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언약을 따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언약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로 내려간 후에도 하나님은 그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래서 무려 430년이 흐른 뒤에 모세를 통해 다시 그 백성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백성을 출애굽시키고 다시 언약을 갱신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나오는 십계명을 통한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죽은 후에도 여호수아를 통하여 계속 그 언약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계속 강조하신 것이 바로 다음 세대였습니다.
그래서 신명기에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는 명령이 자주 나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다음 세대가 일어나지 않도록 다음 세대들에게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계속 강조하였습니다. 쉐마의 명령은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 신명기 6:4-9에 나오는 쉐마의 명령을 함께 읽어볼까요? “4.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그러나 이스라엘은 쉐마의 명령을 잊어버리고 바알신에게 취했습니다. 본문 2:13을 같이 읽겠습니다.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이스라엘은 자기 자녀들에게 하나님 대신 바알을 가르쳤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알 신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알은 도대체 어떤 신입니까? 바알은 한 마디로 말하면 풍요의 신입니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쾌락을 제공합니다. 현대적 언어로 말하면 세속적 성공의 신입니다. 우리의 세속적 욕망을 채우기에 적합한 신입니다. 얼마나 편리하고 얼마나 적절한 신입니까? 바알은 그의 신도들에게 경건한 삶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도덕적 가치관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절제하고 희생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바알이 요구하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더 좋은 희생제물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알은 그의 신도들에게 풍요를 약속합니다. 이런 바알이야말로 우리 인간의 숨은 욕망을 채우기에 얼마나 좋은 신입니까?
한국교회와 미국교회의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받아들인 번영의 신앙은 정확히 바알 신의 현대판입니다. 번영의 신학은 하나님을 잘 섬기면 돈과 성공을 보장한다는 신학입니다. 여러분, 그것이 바로 정확히 바알신앙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현대의 번영신학을 따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섬기지 않습니까? 그들은 주일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십일조도 드리고 봉사도 합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렇게 바알신당을 차려놓고 우상숭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번영의 신학을 따르는 사람들을 바알숭배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사시기 17:13을 같이 볼까요?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미가는 자기 신당에 우상을 세우고 레위인 제사장을 고용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무튼 레위인 제사장이 들어왔으니 여호와께서 내게 복을 주실 것이다.” 무슨 뜻입니까? 자기 마음대로 우상을 숭배하면서도 미가는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완전히 떠났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항상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혼합주의적 신앙을 가졌습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바알도 섬긴 것입니다. 그런데 선지자들은 그들을 가리켜 하나님을 떠났다고 선언하면서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왜 선지자들은 바알숭배를 그토록 강하게 비판했을까요?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바알을 숭배하는 그 땅을 완전히 진멸하라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바알신이 얼마나 끈질기게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할 것인지 미리 아셨기 때문입니다. 바알 신을 현대적으로 말하면 돈의 우상입니다. 여러 우상중에 돈의 우상만큼 강력한 것이 없습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자주 돈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그토록 강하게 돈에 대해 경고하셨을까요? 그것은 돈의 위력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돈의 중독성을 알기 때문입니다. 돈만큼 유혹적인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바알신앙은 한 마디로 말하면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신앙입니다. 형식적으로는 하나님을 섬기지만 내용상으로는 돈을 숭배하는 것이 바로 바알신앙입니다.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이 몰락의 길을 걸은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버리고 이 바알신앙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설교의 제목이 “경고”입니다. 사사기가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사사기가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은 아주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돈을 숭배하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몰락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지금 모세 시대와 여호수아 시대를 지나 사사기로 접어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초창기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핍박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순수한 복음의 터를 닦았습니다. 한국교회의 부흥은 우리 세대가 일군 것이 아닙니다. 일제강점기에 신앙을 지키고, 6.25전쟁 중에도 믿음을 지킨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피와 땀으로 일군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세대가 다 지나가고 일제강점기와 6.25를 모르는 세대가 한국교회의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마치 사사기의 정해진 코스를 밟듯이 지금 우리는 불순종과 배교를 일삼고 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바알을 숭배했다면 우리 시대 사람들은 돈의 우상을 숭배합니다. 우리는 돈을 신으로 섬기면서 참 신앙을 떠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야 하건만 우리는 끊임없이 돈이 중요하고 세속적 성공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지금 우리의 다음 세대가 몰락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조만간에 우리 한국교회는 오늘 우리가 사사기에서 본대로 왕이 없으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그런 교회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사사기는 우리에게 그런 두려운 사실을 지적하면서 매우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돈을 우상으로 섬기고 물질주의적 가치관으로 우리 자녀들을 가르친다면 우리의 다음 세대가 몰락할 것이라는 사실을 무섭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무엘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이런 암울한 시대에도 여전히 순결하게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사무엘과 같은 다음 세대를 길러내야 합니다. 돈의 우상에 굴복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다고 삶으로 고백할 수 있는 순결한 다음 세대를 길러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지금 우리 세대가 철저하게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회개하고 돌이킨다면, 그래서 우리의 다음 세대 가운데 사무엘을 길러낼 수만 있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소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우리 자신이 먼저 돌이켜 회개합시다. 우리가 살아온 삶의 방식을 회개합시다. 그 동안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겼다면 이제 돈의 우상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섬기겠다고 결단합시다. 그럴 때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새로운 소망의 빛이 비칠 것입니다. 사사기의 경고에 온전히 귀를 기울이는 자만이 사사기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사기의 악한 싸이클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악순환, 곧 그 악한 싸이클을 깨트리고 다시 한 번 소망 가운데 일어나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