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 287 |
| 작성일 | 2004-05-09 00:00:00 |
| 열린 문으로 들어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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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문으로 들어가라!(요한계시록 3:7-13)
040509주일낮 우리 교회가 시작한지도 어느덧 오늘로 8주째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벌써 8주가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은데 아직도 그 정도밖에 안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그 기간 동안 많은 일들이 진행된 것 같습니다. 우리 자녀들을 위한 교회학교가 잘 정착되어 진행되고 있고, 9개 목장이 구성되어 활발하게 목장교회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제 나름대로 교회의 모습을 갖추어 가는 것 같습니다. 또한 그 동안에 장년만 28명이 새 가족으로 등록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습니다. 처음에 개척을 준비하면서 어떤 본문으로 설교할까 기도하다가 요한계시록에 있는 일곱 교회에 대한 말씀을 증거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통해서 우리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바르게 잡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는 실제로 이 땅에 존재했던 교회입니다. 다시 말해서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는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교회가 아니라 실재적이고 현실적인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교회들은 예수님께 책망도 받고, 칭찬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단 두 교회만 책망이 없이 칭찬만 받았습니다. 그 두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이 두 교회가 책망은 없고 칭찬만 받았다고 해서 이 교회들이 아무 흠이 없는 완벽한 교회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의 약점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교회가 우리 주님께 칭찬만 받았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에게 가장 중요한 평가는 세상의 평가가 아니라 주님의 평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알려지지 않은 어떤 약점이 있을지라도 주님께 칭찬받는 교회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는 영어로 필라델피아입니다. 원래 이 말은 그리이스어로 필리아와 아델포스의 합성어입니다. ‘필리아’는 사랑이라는 말이고 아델포스는 형제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형제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이 좋은 의미가 왜곡되어서 미국의 필라델피아는 동성애를 상징하는 곳이 되었지만 원래 의미 자체는 상당히 좋은 것입니다. 당시 필라델피아는 지진이 자주 일어나던 곳이었습니다. 얼마나 지진이 자주 일어났던지 고대 역사가 스트라보는 빌라델비아를 ‘지진이 가득한 도시’ 라고 불렀습니다. 지진 때문에 다른 도시로 이주하는 주민들도 많았습니다. 사데를 초토화시킨 지진으로 빌라델비아도 거의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90년대까지 빌라델비아는 황제의 보조금에 힘입어 완전히 재건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에 빌라델비아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렇다면 빌라델비아 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첫째로,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하여 “내가 네 행위를 아는데 너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 내 말을 지켰다” 고 했습니다. 여기서 적은 능력이란 무슨 뜻입니까? 아마도 빌라델비아 교회는 그리 큰 교회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일을 하려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서 적은 능력을 가졌다고 한 것을 보면 비교적 작은 교회였던 것 같습니다. 동시에 재정적으로도 약했을 것입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많은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서머나 교회처럼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습니다. 빌라델비아 지역의 유대인들이 얼마나 박해를 심하게 했던지 주님께서는 그들을 사단의 무리라고 지칭하셨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더 큰 환난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적은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교인들이 사회적으로 신분이 뛰어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말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성도들가운데 영향력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면 아무래도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는 그런 능력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빌라델비아 교회는 약한 교회였습니다. 둘째로, 빌라델비아 교회는 그런 약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말씀을 철저히 지킨 교회였습니다. 8절의 후반부에 보시면 약한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또한 10절에 보면 주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고 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유대인들의 핍박속에서도 말씀을 붙들고 인내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고 한 것입니다. 비록 교인들의 수도 많지 않고 영향력있는 사람도 별로 없는 교회이지만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유대인들의 핍박이 있었지만 그런 핍박에 굴하지 않고 말씀을 지켰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행위를 보셨습니다. 선한 행위는 진정한 회개의 표시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행위를 보시고 그들의 믿음이 참된 것임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빌라델비아 교회가 말씀을 지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킵니까? 8절의 전반부에 보면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다” 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기서 열린 문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주석가들에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이 문을 구원의 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문은 기회의 문을 가리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복음전도의 기회가 열려있다는 뜻입니다. 1세기 로마에는 복음전도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도로가 잘 닦여 있었습니다. 또한 헬라어라는 공용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판인 70인역 성경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에 굶주려 있었습니다. 이교의 미신적인 생각들이 폐기되면서 참된 복음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선교여행을 보면 우리는 그런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3차 전도여행 때 바울은 3년 동안이나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때로는 강당을 빌려서 복음을 전했고, 때로는 개인적으로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그 시기에 대해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렸다.” 고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런 복음의 문을 빌라델비아 교회에도 열어주셨습니다. 주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입니다. 그 분께서 문을 열면 아무도 닫을 사람이 없고 문을 닫으면 아무도 열 수 없습니다. 그 주님께서 지금 빌라델비아 교회를 위해서 복음의 문을 여신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진 교회입니다. 유대인들의 핍박도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면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그 어떤 기회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언뜻 보면 이 두 상황은 서로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능력도 부족하고 핍박받는 교회에 복음의 문을 여셨다는 말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있습니다. 복음이 전파되고 잃어버린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사람은 아무런 일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의 영혼을 건지는 일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말입니다. 전도를 해보면 이런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도무지 열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사람의 마음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가하면 때로는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문을 여시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시면 아무도 그 문을 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문을 여셨을 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문이 닫히기 전에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능력이나 힘을 탓하지 말고 오직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께서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약함을 탓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핍박의 칼날이 조여들어오면 사람은 누구나 위축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는 그런 것에 낙심하지 않고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주님께서 그런 모습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우리 주님께서 보실 때 얼마나 그 모습이 귀하겠습니까? 자녀를 기르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늘 최선을 다하지 않고 게으른 삶을 사는 자녀를 볼 때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러나 능력은 뛰어나지 못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아름다운 본을 보이며 살아가는 자녀를 보면 그 모습이 얼마나 귀합니까?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보실 때 그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여러모로 지난 주에 살펴보았던 사데교회와 대조가 됩니다. 사데교회는 상당히 능력있는 교회였습니다. 누가 봐도 인정할만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실 때는 살았다고 하는 이름은 있지만 실상은 죽은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는 정반대였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여러 가지로 연약한 교회였습니다. 사데교회와 비교하면 너무 약한 교회였습니다. 교인수도 적고, 재정도 약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습니다. 게다가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서는 한 마디 책망도 없이 칭찬만 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비록 자신의 능력은 부족하지만 주님께서 복음의 문을 열어주신 것을 믿고 철저히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연약해도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박해가 있어도 낙심하지 않고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가운데 서머나 교회와 더불어 책망이 없이 칭찬만 들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실제로 일세기에 존재했던 교회이지만 동시에 오늘 우리 시대 교회의 모습을 비추어주는 모델입니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와 마찬가지로 이 시대에도 다양한 교회들이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처럼 이단을 용납지 않고 인내했지만 처음 사랑을 버린 교회도 있을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처럼 환난과 궁핍중에도 낙심하지 않고 죽도록 충성하는 교회도 있을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처럼 외형적인 공격은 잘 이겨냈지만 은밀한 공격에 무너진 교회도 있을 것입니다. 두아디라 교회와 같이 믿음이 성장했지만 물질주의에 빠진 교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지난 주에 살펴본 사데교회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책망만 들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지만 죽은 교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이 책망은 전혀 없이 칭찬만 듣고 있는 교회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계시록에 있는 여러 교회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교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제 막 시작한 작은 교회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사데교회처럼 겉으로 볼 때는 화려하지만 실제로는 죽은 교회라는 책망을 들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이 전혀 능력은 없지만 철저하게 말씀에 순종해서 칭찬만 듣는 교회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이 사회적으로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사람들로만 구성된 교회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이 핍박을 받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우리 교회가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이 주님께 칭찬받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면에서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저는 다른 것보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작지만 철저하게 말씀에 순종했던 부분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사데교회처럼 크고 화려한 교회는 아닐지라도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이 말씀에 순종했다는 면에서는 주님께 칭찬받을 수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위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셨다면 요즘 우리 교회에도 주님께서 복음의 문을 열어주고 계십니다. 교회가 처음 시작된 이래 8주 동안 새신자가 장년만 28명이 등록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중에 많은 수가 주님을 깊이 만나지 못한 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라고는 우리 교회가 처음인 분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다른 교회를 조금 다녔지만 본격적으로는 우리 교회가 처음인 분들도 있습니다. 아직 우리가 구체적으로 전도 프로그램을 가동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이 필요한 많은 영혼들을 보내주고 계십니다. 저는 그런 사실을 생각하면서 주님께서 우리 교회에도 열린 문을 두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문은 주님께서만 여실 수 있습니다. 한 번 열면 주님께서 닫기 전까지는 아무도 닫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문을 열어주셨을 때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여러 가지 시험이 있습니다. 사실상 복음을 전하기 전보다 오히려 더 많은 시험이 있습니다. 사단은 교회가 세워지고 잃어버린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려고 마음먹으면 여러 가지 시험이 있게 마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려고 마음먹었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쉽게 포기합니다. 때로는 자신의 연약함을 이유로 복음전하기를 두려워합니다. 나같이 말주변이 부족한 사람이 전하는 말을 듣고 누가 믿을 것인가 하는 생각 때문에 시도하지 못합니다. 전도하겠다고 다짐했다가도 조금만 상황이 바뀌면 포기합니다. 아니 때로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이 상황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대할 때도 있습니다. 전도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해서든 핑계를 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만큼 전도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사단은 그런 두려움을 이용하여 전도를 방해하는 장애물을 놓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도 많은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황은 다르지만 오늘 우리에게도 많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열린 문을 두었으니 두려워말고 들어가라고 권면합니다.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는 권세를 가지신 그 분께서 우리 앞에 열린 문을 두고 들어가라고 권고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단지 그런 명령을 내리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붙들고 나아갈 수 있는 분명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어떤 약속입니까? 첫째는 핍박자였던 유대인들이 굴복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비록 지금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사람들이지만 주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주님께서 복음의 문을 여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복음의 문을 여시면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사울이 회개하고 위대한 사도가 된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 그런 일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인간적으로는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주님께서 역사하시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생각으로 미리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주님의 약속을 믿고 나가십시오. 주님의 복음을 전해보십시오. 주님의 때에 주님께서 친히 거둘 것입니다. 두 번째 약속은 주님께서 자기 백성의 시험을 면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1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하나님을 거역한 악한 사람들을 시험할 때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시험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테스트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 어려운 시험의 때에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자들은 그 시험으로부터 지켜주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면하게한다는 것은 지켜준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고난을 완전히 없앨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고난속에서도 지키시겠다고 분명하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만난다고 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지키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결코 실언을 하지 않으시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는 그 분께서 주신 약속입니다. 천지를 만드신 주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겠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그 약속을 굳게 붙드십시오. 복음전도자가 붙들고 나갈 세 번째 약속은 “이기는 자는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겠다” 는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여기서 성전의 기둥이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하나님의 성전이란 눈에 보이는 건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을 의미합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에 기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성전에도 기둥이 있습니다. 이기는 자가 그 기둥이 될 것입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외면을 당하고 추방을 당한다고 해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는 영원한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둥이 될 것입니다. 그 기둥에는 세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름들은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이 세 이름이 기둥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이 기둥이 그 이름들에게 속했다는 것입니다. 고대에는 기둥을 만들면 만든 자나 그 기둥의 소유자의 이름을 그 곳에 써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둥에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 씌어져 있습니다. 이기는 자가 하나님과 예수님의 소유라는 뜻입니다. 이기는 자는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예루살렘은 그 희망을 상실했으므로 새 예루살렘이 새로운 희망으로 하늘로부터 내려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가족이 된다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이 세상에서 외면을 당했습니다. 유대인 공동체에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런 현실에서 그들은 소외감에 시달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는 이 땅의 예루살렘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살게 될 것입니다. 그 사실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분명한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그 동안 지진 때문에 두려움에 빠져 살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결코 흔들리지 않을 천국의 기둥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영원히 주님과 함께 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복음전도자에게 이 분명한 확신을 주셨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8:35-39에서 그런 확신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드십시오. 이 말씀을 굳게 붙들고 아무도 여러분의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복음을 위한 열린 문을 두셨습니다. 비록 이제 막 시작한 작은 교회이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문을 여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이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열린 문으로 들어가십시오. 믿음으로 들어가면 놀라운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감옥에 갇혔지만 주님께서 문을 여셔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찬송할 때 주님께서는 감옥의 문을 여셨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그들은 일생동안 주님께서 문을 여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인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바울은 일생동안 이방인의 문을 여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내 힘으로 닫힌 문을 부수고 들어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닫힌 문으로 들어가고자 애쓰지 마십시오. 가시채를 발길질하는 것 같은 고생만 있을 뿐입니다. 다만 주님께서 문을 여시면 그 열린 문으로 들어가십시오. 우리 주님께서는 지금 우리 앞에 열린 문을 두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특별한 은혜로 그 열린 문 앞에 초대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교회를 개척한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입니다. 아무나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중에서도 분립개척의 경험은 아주 특별한 것입니다. 분립개척의 방식으로 교회를 개척하는 것은 특별한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 놀라운 은혜로 인하여 우리는 지금 열린 문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저하지 말고 뛰어 들어 가십시오. 주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뛰어드십시오. 내 능력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복음의 열매가 주님의 능력으로 맺힐 것입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것 같지 않던 자가 주님을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께서 문을 여시면 그런 기적들이 일어납니다. 시험을 당할 때도 지켜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우편에서 그늘이 되어 낮의 해도 상치 못하고 밤의 달도 해치 못하도록 지키실 것입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실 것입니다. 또한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의 가족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을 위하여 내 이름을 버리면 천국에서 우리에게 그 분의 이름을 새겨주실 것입니다. 그 약속을 굳게 붙들고 열린 문으로 들어가십시오. 비록 부족할지라도 저와 여러분을 통하여 잃어버린 영혼들을 거둘 줄로 믿습니다. |